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Posted at 2006/12/10 18:33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모든 발전은 거칠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개선이며 하나는 혁신이다. 이 두 단어를 역사에 적용시킨다면 그것은 아마도 수정과 혁명이 될 것이며 이를 사상으로 표현한다면 수정주의와 근본주의가 될 것이다. 수정주의와 근본주의는 역사에서 수 없는 갈등과 충돌을 겪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물론 어떠한 집단이나 개인의 움직임을 놓고 무엇은 수정주의고 무엇은 근본주의라고 자로 재듯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그것 중 어느 쪽이 더 도덕적으로 옳은 길이라 말할 수도 없으며 마찬가지로 어느 쪽이 더 현실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는지 말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역사에서의 수많은 대립을 귀납적으로 집어보는 것뿐이다. 그 역사의 축적은 이미 충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에서 전혀 진일보하지 않은 것만 같은 반복을 생산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보다 전혀 나을 것 없는 선택을 하며 어쩌면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하나의 데이터를 미래세대에게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말미, 동생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누구와 싸우는지는 알기 쉽지만 왜 싸우는지는 알기 어렵다는 구절을 쓴다. 그렇다고 감독이 단순히 근본주의의 손을 들어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동생은 사형당하기 전까지 정말 국가가 이렇게까지 몸바칠 대상인지 고민하는데 이는 동생을 근본주의자로 보기에 주저하게 만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독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형이 왜 싸우는지를 잊었다는 사실이다. 즉 감독은 근본주의는 옳으며 수정주의는 그르다는 명제를 제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가 비록 정치적 좌파임을 자처하는 인물이며 이 영화도 심각하게 좌편향적인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오히려 감독이 비판하고자 하는 지점은 수정주의의 반복되는 과오인 적대자와의 동일시이며 더욱 더 근본적인, 기본적인 가치로 회귀하기를 권한다. 같은 세력을 적대하던 이들 중 타협을 택하는 이들은 어느 새 자신들과 함께 했던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적대하던 세력과 별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비록 혁명이라는 일이 낯설지 않은 시기까지 돌아갈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외치던 이들이 수구세력과 거시적 관점에서의 협력이라는 이름의 타협을 하는 순간 그들은 어느새 자신이 손잡은 집단과 매한가지가 되어있는 일은 그리 보기 힘든 일이 아니다. 감독은 그 편지의 문구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오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으리라.

그들은 왜 모두 함정을 피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이성의 결여에서 비롯되었건 감성의 과다에서 비롯되었건 그들은 자신의 길에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변했다. 단순히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즉 수정과 혁명 사이에서 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느새 자신의 생각만을 절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했다. 즉 독선적으로 변했다. 영화에서 그들은 때로 법을 무시하기도 하고 토론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한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단순한 자기 이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그렇다면 이전에 자신들을 탄압하던 적대자와 자신들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인가? 그들 역시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이 옳다고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약자들이 희생되고 있지만 자신들의 생각이 옳은 이상 자신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바뀐 것은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 변경뿐이다.

영화는 형제를 그 대립대상으로 하여 미치도록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으나 사실 우리 사는 세상이라고 그리 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수정주의의 딜레마는 우리 속에 존재한다. 단지 과거와 달리 그것이 좀 더 미묘하고 은밀하게 작용할 뿐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은 사회 대다수에게 물리적 방법이 아닌 문화적으로 고통과 억압을 받고 있다. 요란하게 정치적 관계를 내세울 필요도 없다. 크게 보면 여성과 남성의 관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 등 대부분의 사회관계가 이와 다를 바 없다. 쪽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힘을 가지고 있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까. 언제나 강자에게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은 중간자는 약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강자의 입장을 옹호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이들, 약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냉소뿐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벗어나는 길은 결국 자기 내부부터 초심을 유지하는 것 뿐일테다. 근본주의와 수정주의, 그들이 세상을 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그 자체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다. 그러나 어떠한 길이건 민주적인 자세와 약자를 배려하는 자세를 잃어버리는 한 그 지긋지긋한 딜레마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만일 그러한 자세가 그들 내부에서 처음부터 존재하였고 변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수정주의들이 정치적으로는 좌절했을지라도 적대자와의 동일시라는 비극을 양산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보다 더 힘든 길이 어디 있을까? 영화 속에서 형은 동생을 죽이는 장면을 지휘하고 동생의 아내가 오열하는 장면이라도 볼 수 있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어쩌면 형은 영화의 결말 이후에라도 그 끔찍함을 되새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그러한 비극을 되돌아 볼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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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그녀, 가로지르다 2006/12/12 13:46 [Delete]
  1. 사엘
    요즘은 내가 악플달만한 만만한 글을 안쓰네
    아래 글은 순진한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워서 패스
  2. 염창훈
    아아, 켄로치.. 나 10월에 휴가갔을 때 우연히 봤는데 정말 가슴따뜻해.
    내가 본 건 '티켓'이었어.
    봄에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로 또 간건데,,
    좋아하는 영화관이 생긴거지.
    그나저나 메리크리..
    • 2006/12/25 22:09 [Edit/Del]
      이제 몇 개월 남은게지, 대체 -_- 애들 다 제대하니까 웬지 열 받는다 -_-

      내년에나 볼 수 있겠구만, 건강히 잘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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